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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억지춘양’의 유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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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학 기자
기사입력 2021-03-05

 

      <억지춘양이란 말의 유래를 머금고 있는 봉화군 춘양면의 춘양역>

 

왔네 왔네 나 여기 왔네 / 억지 춘양 나 여기 왔네 / 햇밥 고기 배부르게 먹고 / 떠나려니 생각나네 / 햇밥 고기 생각나네 / 울고 왔던 억지 춘양 / 떠나려 하니 생각나네

 

이 가사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일대에 전래되는 억지춘양이라는 속요이다. 옛날에는 교통여건이 좋지 않아 춘양이란 곳은 상당히 외진 곳이었다. 하도 외진 곳이라 외지에서 시집을 온 부녀자들이 이 춘양에 한 번 들어오면 다시 가는 친정 길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가기 힘든 발걸음을 억지춘양이라 표현했다는 것이다.그렇게 어려운 여건을 헤집고 막상 춘양에 들어와 살다보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고 춘양이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금정광산, 춘양목 등으로) 있는 고장이어서 이제는 춘양을 떠나려니 되레 섭섭하다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춘양속요라는 가사에도 처음에는 오지라서 억지로 찾아 들었는데 춘양에서 잘 먹고 잘 지내다 돌아가려니 마음 한 구석에 아련히 미어오는 아쉬움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토해낸 것이다.

 

또,  하나의 설로는 예로부터 백목(百木)의 왕()’이라고 까지 불리고 춘양을 대표하는 소나무인 춘양목이 너무도 유명하여 춘양.장동(춘양 소로리).내성(봉화)장날 상인들이 너도 나도 내다 팔려 가져온 자기 나무가 춘양목이라고 우긴다 해서 억지춘양이라고 하였다 하는 설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억지춘양에 관한 설이 또 하나가 있다. 이는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설이며 가장 유력한 설이다. 우리말 어원사전(김민수 편)에도 억지춘양은 영동선을 개설할 당시 직선으로 뻗어 달리게 설계된 노선을 춘양면 소재지를 감아 돌아 지나가도록 억지로 끌어들인 데서 나온 말이라 되어 있다.

 

이 춘양 지역은 생김새로부터 철로 영동선의 역사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태평양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전쟁물자 확보에 다급해진 일본이 춘양지역의 풍부한 임산물 및 광산물 수송을 위하여 영주~춘양간 영춘 철로 부설에 착수한 것이 1944년의 일. 일본은 보국대(報國隊)’라는 낯선 이름으로 경북 북부지방 주민들을 동원하여 철로 부설공사에 투입하였다.

 

전략물자 수송이 다급하여 옴에 따라 1945년 초에는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그들의 관동군 1개 대대를 이 지역으로 옮겨 철도 부설과 봉화군 소천면 일대의 중석.망간.형석 채광에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영춘 철도는 영주~내성(지금의 봉화)간이 완공돼 시운전을 개시할 무렵 8.15해방을 맞으면서 공사 중단과 함께 그 해 보기 드문 폭우로 인해 시운전도 못하고 선로가 유실되는 비운을 맞는다.

 

그 후 삼척지역 탄전 개발에 따른 무연탄 물동량의 급증에 더욱 필요성을 느끼게 된 정부는 영주~철암간 영암선 부설공사를 1949년 재개하게 된다. 이어 19503월 영주~내성간 14.1를 우리 손으로 착공하여 개통했으나 6.25동란으로 다시 중단되는 두 번째 시련을 맞게 된다.

 

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1953년부터 산업선 부설은 다시 계속되어 195421일 내성~거촌간 5.5, 195521일에는 거촌~봉성간 5.5, 71일에는 봉성~춘양간 12.1가 개통됨으로써 철암의 무연탄을 실은 첫 열차가 우리의 손으로 부설된 철길을 타고 서울로 운송되는 첫 길이 열리게 되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지역의 주민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고집스레 황토색으로, 철로를 놓으려고 기초공사를 시작할 때 지방 원로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친다. 산을 파헤치면 명산(兩白)의 정기(精氣)를 다 잃는다는 풍수지리설의 신봉사상과 침략야욕에 광분하는 일본의 손으로 진행된 공사인지라 민족적 항의와 거부반응에서 오는 필연적인 현상이었으리라하지만 이런 거부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철도공사는 강행되었다.

 

공교롭게도 일본 패전, 6.25동란 등으로 철도공사가 여러 차례 중단되는 시련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자유당 시절 지역출신 J모 원내총무에 의해 춘양면 소재지를 감싸돌아 현재의 춘양면 의양4리 운곡에 역사(驛舍)가 들어앉게 되었으니 이로 인해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원래 억지춘양이란, 사전적 의미로 억지로 어떤 일을 이루게 하거나 어떤 일을 억지로 겨우 이루어 내는 비유 격에 이르는 말로 풀이되고 있으며, ‘억지춘향으로 표기한 사전도 없지 않다.

 

[봉화 이문학 기자]

 

▲ 봉화   춘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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