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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묵대사》바다를 술통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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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한 논설위원
기사입력 2021-03-01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으로 베개 삼고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아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도리어 긴 소매가 내 곤륜산에 걸처질 까 꺼려지네(天衾地席山爲枕 月燭雲屛海作樽 大醉居然乃起舞 却嫌長柚掛崑崙)" 진묵 스님이 쓴 선시다. 스님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켰던 서산대사와 달리 오직 수행에만 진력했다. 

 

 

 

 

오직 참선과 경전 탐독에 집중했으며 만수산 기슭의 산 열매를 따서 술을 빚어 곡차라 하여 많이 마셨다. 이 시에도 술에 취해 바다를 항아리에 담긴 술로 표현했다. 스님은 하늘과 땅을 자신이 기거하는 집으로   생각하고 산은 베개로 달은 촛불로 구름은 병풍으로 삼고 술에 취해 춤을 추다보니 장삼 자락이 중국 최고의 산 곤륜산에 걸처질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과히 그의 기상이 하늘 땅을 덮고 그의 수행이 성불의 경지에 도달한 표현을 하고 있다.  

 

 

 

 

스님은 조선시대 중기 1562년에 전라도 만경현 불거촌에서 태어나 72세까지 살았다. 스님의 본래 이름은 일옥이며 대사가 태어났을 때 주위의 풀과 나무가 3년 동안 시들었다. 사람들이 큰 인물이 태여날 증조라고 했다. 스님은 태어나면서부터 비린내 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심성이 지혜롭고 사랑스러워 불거촌에 생불이 태어났다고 했다. 

 

 

 

 

7살에  전주 서방산 봉서사에 들어가 불경을 읽혔다. 불경의 내용을 깊이 알고 눈으로 보기만 하면 외우게 되어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 없었다. 그에게 아침 저녘으로 부처님과 신중님께 향을 사르고 예배를 드리도록 했더니 주지 스님의 꿈에 "저희들 작은 신들이 큰 스님 부처님께 예배를 받으니 죄송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일 아침부터는 큰스님깨서 예배하시지 말라 하여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대중들이 입을 모아 "부처님께서 다시 태어나셨다" 고 하였다. 

 

 

 

 

진묵대사는 서방산의 봉서사와 모악산의 수왕사, 무량사에서 수행 하면서 그의 기행과 곡차에 대한 일화를 남겼다. 창원 마산포의 아가씨가 죽어서 기춘으로 환생하여 시봉한 일, 술 거르던 중이 금감산의 철퇴를 맞던 일, 열명암에서 시자를 속가에 보내고 능엄삼매에 들어 갔던 일, 나한이 사미로 화신하여 낙수천을 건너던 일, 쌀 뜨물을 뿜어서 해인사의 불을 끄던 일이 그의 저서 '어록' 에 담겨 있다. 

 

 

 

진묵 스님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그의 고향 불거촌에 "무자손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 라고 하여 자손이 없어도 천년동안 향화를 올릴 명당을 찾아 어머니의 묘를 모셨다. 지금도 회포부락에는 진묵스님의 어머니 묘가 있으며 천년 동안 향화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진묵 스님은 밤길을 가야하는 누이를 위해 해를 멈추게 했다든가 물고기를 잡아 끓인 매운땅을 먹고 강에 대변을 보니 배속에 들어 갔던 고기들이 모두 살아나와 강물로 들어갔다는 일화도 있다.

 

 

 

 

진묵 스님이 부처님의 환생인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일생을 통해 불교의 수행에 정진하면서 성불을 하고 중생을 구제하려 했다. 알려진 일화에는 모두 불쌍한 중생을 위한 자비가 동기였다. 위의 선시의 마지막 부분의 해석을 다르게 할 수도 있다. "장삼 자락이 최고의 산에 걸릴까 염려가 된다" 는 것을 "장삼을 벗어 곤륜산에 걸처 둔다" 로 해석할 수 있다. '걸친다' 하드라도 천지를 무대로 술에 취해 춤을 추다 세상의 최고봉 곤륜산에 웃을 걸쳤으니 성불된 대사의 최고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동한 DM(dream making)리더십포럼이사장, 전 세계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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