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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3.1 절 아침 봉화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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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사입력 2021-03-01

           <봉화,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최근 태극기를 교체하기 전의 모습>

 

일제로부터 국권회복을 위해 민족자존의 가치를 드높였던 선열들의 위업을 기리고 애국심의 고취를 위해 제정된 102주년 3.1절 아침, 봄비가 내려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3월의 첫날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해저2리 230-1번지에 소재한 봉화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韓國儒林獨立運動巴里長書碑)를 찾았다.

 

무너진 나라를 되찾아 세우는 시대정신을 실천한 분들을 독립지사라 일컫는다. 이곳 봉화군에도 많는 독립지사를 배출하였고, 그 가운데서도 파리장서 운동 참가자가 단연 우뚝하다.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은 대한민국 독립운동 51년(1984년~1945년) 역사에서 한 가운데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짓는 평화회의가 프랑스에서 열릴 때, 온 겨레가 일어나 “대한민국이 독립국”이라고 전 세계에 선언한 것이 3.1운동이고, 그 평화회의에서 곽종석선생을 필두로 137명의 대한민국 유림대표가 보낸 독립청원서가 바로 파리장서였다.

 

여기에 봉화출신 유림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봉화읍 유곡리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권명섭, 권병섭, 권상문, 권상원, 권상도, 권상익선생과 봉화읍 해저리의 의성김씨 문중에서 김건영, 김순영, 김창우 선생 등 아홉 분이 그 주역이었다.

 

서명유림 137명 가운데 경북 출신이 62명으로 가장 많은데, 봉화군은 성주군(15명)과 달성군(11명, 당시), 다음으로 세 번째이니, 파리장서 운동에서 가지는 봉화군의 위상은 실로 다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함에도 전국에서 가장 늦은 지난 2014년 8월 28일이야 봉화에 이 파리장서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개최한지 만 7년 여 의 세월이 지났다. 3.1절 102주년 아침 이 파리장서비 앞에는 그 흔한 꽃 한 송이 올려 지지 않고 이 국가지정 현충시설을 찾는 발길은 끊어진지 오래다.

 

개막식 당시만 해도 이 기념비가 후세들로 하여금 자랑스런 우리고장 애국선현들의 올곧은 선비정신과 숭고한 애국충절에 대한 정신을 맥으로 이어가자던 다짐은 어디로 가고, 매년 기념행사를 갖고 숭고한 유림의 독립정신을 기리자던 맹세는 빛을 바래고 태극기는 찬바람에 찢어진 채 매달려 있기 일쑤다.

 

 [봉화 이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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